지지 않는다는 말 - 김연수 지음/마음의숲 |
김연수의 작품은 여행에 관한 에세이로 첨 접하고 좋아하게 됐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아마도 하나밖에 읽지 않은 듯... 작품들의 소재가 내가 좋아하는 류가 아니어서 섣불리 접근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런던 와중에 다시 그의 새로운 에세이집이 발간되어 반가운 맘에 선택했는데... 나 한국작가 중 젤 좋아하는 사람 김연수가 될 거 같으다... ^^;
한동안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할때 그의 소설보단 그의 수필을 더 좋아했었는데 김연수도 그렇게 되어가는 듯 하네;;;ㅋ
읽으면서 정말 아껴서 읽고 싶단 생각을 하며 본 책...
특히 이 책 읽을때가 좀 안좋은 상황이었는데 나에게 큰 위안을 주기도 했고, 힘든 시간을 이겨나갈 수 있게 격려해 준 책이 되기도 했으니 정말 내가 아껴야 할 책인 것 같아~
구구절절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하며...공감에 절로 끄덕끄덕하게 되는...
그리고 이제 40대가 되어 어린시절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일들을 해오며 어느정도의 위치에 올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가 부럽기도 하다... 그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받아 나도 지지않고 일어서리라~
아, 중간에 홍상수의 영화를 본받아 쓴 장이 있는데 완전 재밌다~ㅋ 이것때매 나 홍상수 영화 봐봐야 되겠다~ㅋ
- quote
* 한반도는 1백년 가까이 전쟁 상태였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건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하는 어떤 행위를 뜻한다. 전후에 태어난 우리는 모든 싸움은 이겨야만 한다고 배웠다. 패배자가 되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러니 축구마저도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온 국민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는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졌다고 생각하고 그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그게 바로 "졌다, 졌어. 진거야"라는 반어적인 체념이 아닐까? (중략)
그중 내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 세상이란 초등학생들의 기대처럼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나쁜 사람들은 여점히 나쁘고, 강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힘을 이기적으로 사용하고,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쓴다. 자란다는 건 내일의 세계가 오늘의 세계보다 더 나아진다는 걸 믿는 일일텐데, 세상이 이모양이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우리는 자라기가 좀 힘들어진다. '이 세상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상태로 그냥 존재하는거야. 존재란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좋다고 말해서도, 나쁘다고 말해서도 안돼.' (중략) 나는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세계를 원한다. 더 좋은 존재여서 나를 감동시키거나, 더 나쁜 존재여서 내게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한 세계가 아직은 내가 원하는 세계다. 왜냐하면 그런 세계는 나의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내 감각을 일깨우는 한, 나는 매 순간 깨어 있을 수 있다. (중략)
마르코 폴로의 일생은 분명 실패한 삶이다. 세속적으로 바라봤을 때, 이탈리아의 지방 시장으로 살았더라면 그의 삶은 성공한 삶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으로서 그가 선과 악에 무디어지고, 하루하루 반쯤 잠든 채로 살아간다면 그걸 제대로 된 삶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희로애락의 고통을 피아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이 지복의 삶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건 복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감각이 잠든 삶이리라. 감각이 잠들면 우린 자신이 지금 숨을 쉬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알지 못한다. (중략)
달리기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중략) 매순간 나는 뭔가를 느낀다. 힘들기 때문에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 세세하게 느끼는 한에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진다. (중략) 달리는 동안에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에서 초월한, 더없이 편안한 상태에서 달리는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건 잠을 자면서 달린다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잠을 자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 수는 없는 일이다. (중략)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라.
*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우리의 삶 역시 끝이 있는 여행이지만, 그 사실을 매 순간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략)
우리가 삶의 사소하나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무시하고 굵직굵직한 것들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다가 결국 후회하면서 죽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중략)
아마도 매일 뭔가를 끝낸다는 그 사실에서 이 기쁨이 오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고통과 경험이 혼재하는 가운데, 거기 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자발적으로 고통이 아니라 경험을 선택할 때, (중략) 그렇게 매일 그 일을 반복할때. 세세한 부분까지 삶을 만끽하려는 이 넉넉한 활수의 상태가 생기는 것이라고.
* 최고의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살수있는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이리라. 물론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건 매순간 바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산다면, 옛날에 좋아하던 유행가를 들을 때처럼 특정한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들을 많이 할 것이다.
결국 최고의 삶이란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뜻이다. (중략)
여름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달리기란 뜨거운 햇살과 서늘한 그늘을 번갈아 가며 지나가는 달리기다. 30도가 넘는 낮에 달린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두달만 지나도 이제 그런 달리기를 하긴 어려워질텐데. 최고의 달리기를 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삶도 마찬가지다.
* 되돌아볼 때 청춘이 아른다운 건 무엇도 바꿔 놓지 않고,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
* 골목길 맞은 편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정원에는 놀랄 정도로 키가 큰 플라타너스가 바람에 흔들린다. 벌레에서 시선을 돌려(중략)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는 이 여른의 전부다. 내가 아는 여름의 세계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략)
휴식이란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와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나를 둘러싼 반경 10미터 정도,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구나.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몇 명, 혹은 좋아하는 물건들 몇개. 물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계가 그렇게 넓을 이유도, 또 할 일이 그렇게 많을 까닭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잘 쉰 셈이다.
*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도시에서는 이런 감정을 절대로 느끼지 못한다. 도시에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중략) 도시에는 나보다 늦게 태어나서는 나보다 일찍 사라지는 것들로 가득하다. 도시에서 나는 연민을 느낀다. 이 연민은 사막에서 별들을 바라보며 내가 느낀 고독에 비하자면, 얼마나 저렴한 감정인지 모른다. 이 저렴한 연민은 나를 자만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마저도 그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리라. 이 모든 게 환한 밤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별빛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독이 너무나 비싼 감정이 됏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고독의 가격이 낮아지기를 바란다.
* 평생 철들지 않고 애처럼 살 것 같았는데 이제 우리 또래는 하나둘 고아들이 되어 갈 것이다. 어떤 고아들도 철부지로 살지는 못한다. 마흔 살이 된다는 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나이라는 느낌이 든다. (중략)
자연이라는 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때로 그건 너무 잔인하다. 어떤 일을 두고 누군가 "자연스러운 일이지"라고 말한다면, 그게 잔인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전환, 나 역시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깨달음이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사람을 무기력하게만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 (중략) 마흔 살의 잇점(중략) 그건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어느 날 갑자기 그 개별적인 존재의 슬픔이란 그 존재 역시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 나는 모든 화가와 작가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나에 대해서 그리고 썼던 것이다. (중략)
지난 한 해 나는 정말 힘든 시기를 거쳐 왔다. 내가 힘들었다면,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들기만 했다면, 겨울까지 우린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려운 일 못지않게 즐거운 일도 많았다. 그 사실은 이 겨울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증명한다. 바람이 매서우면 매서울수록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겨울다운 겨울에 우리는 우리다운 우리가 된다.
*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말하고 나면 진짜 그렇게 믿어 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먼저 입과 귀로 취한다. 그다음에는 마음이 취하게 된다.
* 인생을 선용하는 기술은 바로 거기에, 지금 이 순간 할 일을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으니까. 인생은 이다지도 기니까 지금 할 일은 꼭 지금 하고 지나가는 게 좋겠다. 나중에는 또 그때 할일이 있을테니까.
* 중요한 것은 지금도 문득 내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 가능하면 눈을 크게 뜨고 다녀야만 한다는 점이다.
* 왜 20대에는 제대로 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모든게 갑자기 부질없어 보이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20대에는 결과는 없고 원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제대로 산다고 본다. 우리가 자꾸만 어떤 결과를 원하는 건 그 때문이다. (중략)
20대가 지난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건 정말 어렵지만,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매일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쓴 최고의 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중략)
마라톤을 완주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잇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달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기 무척 힘들지만, 경험상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 '일단 끝내기' (중략) 목표고 계획이고 다 필요없고, 일단 끝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비롯했다. 만약 단번에 끝낼 수 없다면)즉 '을의 나'가 갖은 핑계를 늘어놓는다면) 일을 잘게 쪼개서라도 시작한 일은 끝낸다. 정 안 되면 손가락 까딱해도 할 수 잇는 일, 예컨대 물 한 잔 마시기 같은 것부터 시작한다. '을의 나'를 잘 설득해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끝내는 습관을 들이면 나중에는 제 버릇 못버리고 어마어마한 일들도 기어이 끝내고야 만다는 이론이 바탕에 깔려있다.
* 계절은 오직 변해 갈 뿐이다. 마치 고무마음을 가진 나처럼 자연은 번심에 변심을 거듭한다. (중략)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심하는 이 마음이 자연과 가장 흡사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달리기란, 우리가 평생 하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들의 진로를 나란히 만드는 일.
* 절망을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인간으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삶은 고급 예술이다.
* 20여 년 전, 그 질문의 소년은 미래의 자신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절대로 믿지 못했겠지. 이런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면, 가능하면 오래도록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고 형태와 색을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면, 두려움과 공포와 절망과 좌절이 지금 이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걸. 내 절망과 좌절은 과거에 있거나, 두려움과 공포는 미래에 있다는 걸. 지금 이 순간에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감각적 세계뿐이라는 걸.
*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달리기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달리기는 증오심과 공격성향을 가라앉히고 우리의 자존심을 키워 더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게 된다면 세계는 혁명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자동차는 사라질 것이고 어리석은 사치와 억압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다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테니 환경은 보존되고 인종차별은 없어질 것입니다."
*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얘기다. 경험한다는 것은, 절대로 잊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차를 타거나, 심지어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마저도 제대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올리비에는 실크로드를 자기 몸 안에다가 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중략)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말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온몸으로 경험할 수는 있게 되는 것이다.
* 몸의 형태가 정신을 규정한다는 말이다. (중략) 건강해야 건전한 정신을 지닐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몸 자체가 생각한다는 뜻에 가깝다.
* 시는 공상과 몽상으로 씌어지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씌어진다는 말이다. 습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처음 보는 것인 양 생생하게 볼 때, 그저 흘리듯 듣는 게 아니라 귀를 기울여 들을 때, 시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시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의 온몸을 모두 던져 우리 외부의 시적인 것을 감지해야만 그 시는 언어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나는 상상이란 이처럼 몸이 생각을 다한 곳에서 일어나는 뭔가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상상한다는 것은 자기가 몸으로 알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본다는 얘기다. 이건 다시 말해서 자기가 어디까지 아는지 몸으로 겪어 본 뒤에야 상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기가 경험할 수 있는 그 끝까지 가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막한 벽이 나온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은 바로 거기다.
* 심장이 뛰는 한, 삶에서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진짜 최선을 다하면 그 순간 자신에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즐거움이 얼마나 컸던지 지나가고 나면 그 순간들이 한없이 그립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과 일을 통해서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한없이 투명해진다는 것. 그 누구 앞에서도 어깨를 움츠리지 않는다는 것.
* "신은 내게 삶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신에게 보답하기 위해 나는 그 삶을 살아간다." 나뭇잎을 떨어뜨린 나무들도,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호수의 물결도, 조금씩 밝아오는 하늘도, 어쩌면 모두 신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세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까닭도, 또 달릴 수 있는 힘이 남은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뛰지 않는 가슴들도 모두 유죄다.
* 행복과 기쁨은 이 순간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즉각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행복과 기쁨이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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