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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 거기 by 장우철

LadyYvonne 2013. 1. 1. 21:08
여기와 거기 - 10점
장우철 지음/난다

 

 

- 부제: GQ 에디터 장우철이 하필 그날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

 

 

 

처음 한페이지 정도 읽었을때 이책 포기할까 생각했드랬다... 이게 뭐야~ 온라인에서의 흔한 조각조각난 감상적이고 단편적인 생각들을 스타일리시한 모양으로 포장해서 책이라고 낸 그렇고그런 흔하고 뻔한 에세이류구나... 했드랬다...

근데 몇장을 더 넘기며 내가 보물을 발견했구나 싶은 기쁨이란...

오히려 책의 디자인이랄수 있는 편집스타일은 살짝 맘에 안들었지만... 그의 문장문장 그의 생각들 그의 삶의 모습들이 마구마구 내게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재미와 공감 그리고 위안을 느끼게 한다...

특히 장우철 표 문체들이란... 이건 멋만 잔뜩 부린 그런 겉멋 든 문체가 아니다...(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정말 절묘하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에게서 받은 영감들... 내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거 같은...

거침없는 그의 삶의 태도가 부럽다...

넘나 기분좋게 읽은 책... 새해를 희망찬 기분으로 시작하게 해주는 것 같은 그런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그런 책...

멋진 사람 같으니...

 

 

 

 

 

 

- quote

 

* 백원이라도 아끼고자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습관이자 본능이다. 아들이 하도 '지랄지랄'하니까 택시를 타긴 탄다만 역시 내키진 않는다.

 

* 소학교가 있고, 쉬는 시간 건물 밖으로 나온 아이들이 보인다. 여전히 쟁기로 논을 가는 농부가 있고, 강둑에 누워서 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생생한 풍경이 손에 잡힐 둣 지나가는데, 안내원들은 마이크를 들고 이런 얘기나 한다. "북측 사람들이 남측 사람들 영상통화하는 거 알면 얼마나 신기해할까요?"맙소사. 옥류관 평양냉면이 맛없다고 단정한 안내원은 평양냉면 맛이 어떤 건지 아예 모르는 듯 했다. (중략) 거기까지 가서 조미료 팍팍 친 식당 밥이나 먹고 오도록 하는 안내라니. (중략)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본 대형 아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 봄밤

 돌아오는 길에 봄은 하루뿐이야, 라는 말을 들었다.

 

* 이소라와의 인터뷰

Q (6집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걸 '이소라가 희망을 노래한다'는 식으로 보진 않아요. 당신은 언제나 지금, 여기만 중요한 사람 같거든요.

A (중략) 현재만 중요한 사람이라는 말, 참 맞는 거 같네요.

(중략)

A 결혼은 좋지 않아요. 뭘 묶어놓고 확실하게 다지게 되면서 그것과 빨리 헤어지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그것=사랑?)

(중략)

A 사실 오늘 죽잖아요. 내일 죽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내 임종의 순간은 오늘이란 말이에요. 제가 서른일곱이지만, 지금을 살고 있지만, 결국엔 나 죽는 날도 분명히 오늘일거야, 지금 이순간.

 

* 사랑을 잃고 나는 찌네

 누군들 모를까마는 욕망은 다른 욕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조금은, 아주 조금쯤이라면 말이다. (중략)

 살이 쪘다. 오늘도 살이 찐다. 멀으니까. 먹고 나면 자니까. 마른 것들은 이쑤시개 같은 충고를 계속 찔러댔다. (중략) 모르는 소리. 누굴 위해 먹니? 어떻게 보이려고 먹니? 시간과 음식과 욕망의 삼위일체. 그걸 행하고 있는 중일 뿐

 

* 긴자는 세월을 믿지 않는다

 에도시대 전통방식으로 만든 빗자룰를 만든다. (중략) 그 매듭 한 결 한 결을 만지면서, 남아있는 것들이 여전히 새로울 수 있는 비밀을 생각했다. (중략)

 파고드는 바람이 불었다. 내일이면 꽃이 피겠지만 오늘만큼은 봄이 아니라는, 귀여운 계절의 인사.

 

* 그러나 우리는 매화를 보지 못하고

 음력 1월 25일 아침에 서울은 눈이 온다고 했다. "매화 찾아나선 길에 설雪이 마침 래來하니 예사롭지 않구료." 종로구 소격동에 사는 벗이 모토로라 '베컴폰' 저쪽에서 이조판서풍으로 말했다.

 

* 어둑하니

 낮잠에 들어갔다 나오니 어둑했다.

 

 

* 김추자와 김정미

 두사람은 어느새 한국 대중음악의 기이한 신화가 되었지만, 그게 천구백칠십몇년 서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은 떠올릴때마다 뻐근했다. (중략) "다 있었어, 벌써 다 있었어."

 

* 마티스

 인터뷰 장소에 온 바스는 "나는 세잔을 좋아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정적) 그걸 읽고서 마침내 나는 세잔으로부터 벗어났다.

 

* 아름다울텐가요?

 

* 수석

 우연히 평원석 하나를 보기 전까지, 세계는 없었다. (중략) 마우스 옆에 단단한 돌 하나를 두고 거기에 손을 올리고 쉬면 얼마나 호젓한지,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 구름의 이름

 1802년 구름의 이름을 지은 과학자 루크 하워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내 이름보다 구름의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지길 원합니다." 1820년에 괴테는 썼다. "내 노래에 날개를 달아 고마움을 전하네. 구름과 구름을 구별해준 그에게."
 

 

* 나의 맛집

  하지만 진득한 손맛이 필요한 자리에 깔끔 떠는 재주만 들어가 있을 때, 그건 맛이 아니라 스타일이다. 일본 그릇에 북유럽 의자 좀 갖추고는 나 센스 있지? 묻는 접시들. 네, 센스 있어요, 맛없고요. 그런가 하면, 굴비백반을 시켰더니 불고기에 게장에 소시지부침까지 나오는 건 '상다리가 부러진다'를 부정적으로 도입한 오지랖일 뿐이다. 그 집 굴비 맛이 유난했다 한들. 고개를 흔들 참. 맛집은 맛에 국한되지 않는다. 먹고나서 생각하길, ;이 집에 또 오고 싶은가?라고 되물었을 때 또 가고 싶은 집과 결국 또 가는 집만을 맛집이라 부르고 싶은 이유다. 까무러치게 맛있어도 어쩐지 발걸음이 절로 향하질 않는다면 그건 남들 맛집이다.

 

 

* 사진작가 권부문과의 인터뷰 1

Q (중략) 어떤 풍경을 어떻게 찾아나서는 걸까?

A (중략) 사람은 자기가 인식하고 살아간 만큼 세상을 본다. 나는 그 문제에 굉장히 치열했다. 사소한 사물이라도 관계를 맺으려면 이해하는 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끊임없이 생각하면 이미지적인 꿈이 생긴다. 뭔가를 만고 싶다거나 뭔가를 봐야 할 것 같다는 꿈을 꾸다보면 결국 만난다. 너무나 절묘하게. 이가 아플 때라야 치과 간판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갈망하는 이미지를 만나는 과정 속에 여행이 끼어드는 거다. 각자 마음속에 어떤 파장을 갖고 있었느냐애 따라서 자기 앞의 풍경은 다르게 이해된다. 이 사람은 이렇게, 저사람은 저렇게 살아온 만큼 '봐내지' 않겠나.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한다기보다는 그 풍경에 관한 이해력을 생활해내는 거다. 그랬을 때 풍경의 에너지가 떨림판을 울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작업을 했다기 보다, 내게 일어난 일 같다.

(중략)

 어떤 이미지가 온전히 자기 몫이 되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있을 것이다. 당황한다는 건 그야말로 바로 그 전의 내가 아닌, 뭔가 변화가 일어난 내가 되었다는 얘긴데

(중략)

Q 칸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영화와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를 거의 똑같이 생각하는 마당에, 당신의 '동시대성'은 어려운 싸움이다.

A 금방 이익이 오는 길이 있지만 조심해야 한다. 지식으로서는 굉장히 금기시해야 한다. 우리는 내셔널리스트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무섭다. 집단히스테리다. 작가라는 사람들조차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 연설에서 "일본보다 우리가 낫게 해야 됩니다. 아자! 파이팅!"

(중략)

 호기심을 갖지 못하고 고답적인 자기 입장에서 한 치도 나가지 않는다면, 요즘말로는 보수꼴통이라고 하던데... 작가는 현재형이어야 한다. 작업 자체가 현재형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제조업자일 뿐이다.

 

* 박인환은 쓰길,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했다.

 

* 이상은 인터뷰 중

무슨 얘기냐면 옛날에는, 60년대든 70년대든 80년대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간에, 만약에 가수가 있다면 그 주위에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는 거야. 비요크가 백조드레스를 입고 나와서 "이거 친구가 만들어준 거예요." 하는게, 아티스트 주변엔 그렇게, 이 사람은 사진가, 이사람은 소설가, 이사람은 패션 디자이너, 그렇게들 모여서 서로서로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는 건데, 아이돌 시스템은 온통 상업적 이유로 구획된 인물들만 의도적으로 포진되어 있잖아. 어떤 아이디어나 생각이라는 게 나 혼자 닭장에서 알 낳는 것처럼 될 수는 없는 거거든.

(중략)

 이렇게 롤링 스톤 하면서 자기가 계산하지 못한 만남이 생기고, 영역이 바뀐다. (중략) 나는 도쿄에 살면서 뭔가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다른 생각을 시작했던 것 같아.

(중략)

Q 지루한 건?

A 네가 편집장이 되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산으로 들어가서 소설을 쓴대, 그런 얘기일 수도 있어. (중략) 근데 점점 어떤 보편성이 더 많아진달까? 온통 날카롭던 것들이 흐물흐물해지고 체에 걸러지면서 비틀스 음악같이 되는거. 안아주는 것 같은 거. 그런 성숙이 하필 내게 왔으면 하는거지. 너에게도.

 

* 미식의 황홀 대식의 평화

 창밖엔,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면 "저는 참새예요, 가을 참새요" 대답하는 뚱뚱한 것들이 있다. 나는 안에서 먹고있다. 우리 서로 무시하기로 해요. 그게 편하잖아요.

 

* 장인이 아니라 달인을, 정성이 아니라 수제를, 아름다움이 아니라 디자인을, 겸손이 아니라 매너손을, 유머가 아니라 예능감을 필요로 하며 장려하고 우대하는 세상. 사회는 없는데 개인은 시끌시끌 우글거린다. 좌고 우고 간에 사회가 기능해 거르고 매김해야 할 말마저 버젓이 미디어를 통하니, 입 가진 자의 쾌락과 귀 달린 자의 고충이 떨어질 줄 모른다. (중략) 부질없기가 콩가루 같은 날들.

 

* 윷이나 놀자고 깽깽이들 뭐 하나 전화를 걸었더니, 아픈 것 아프다 만것 아프려고 하는 것 골고루다.

 

* 도시의 서쪽에 사는 옛날사람은 2006년 11월 11일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 그러다 익숙한 술집 간판과 마주쳤다. 그집을 언젠가부터 가지 않았다. 일상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 이번 시즌 트렌드는 어떤 것인데, 저 차림은 작년 트렌드이므로 틀렸다는 식은 패션을 유행의 시녀로 전락시키며 그 다양한 매혹을 등지고 역주행한다. (중략) 지금 뭇 패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대로 된 언어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스티븐 시걸의 영화를 영화제 심사위원의 시각으로 보겠다는 의도와 비슷하다. 무모하고 헛되다. 충고는 개선을 향하지 않고 비판은 쇄신을 전제로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가 남는다. 그건 부끄러움이다.

 

* '국민여동생'이니 '국민남동생'이니 하는 말들의 잔치판. 배우는 작품과 배역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가수는 노래의 분위기로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캐릭터를 정하고 활동한다. 그렇게 정해진 캐릭터 안에만 있으면 된다. 잘 만든 캐릭터가 있으면 알아서 수익창출 모델이 된다. 그 외의 것은 없어도 그만, 아니 없을수록 좋다. (중략)

 요즘 팬덤의 특별한 성격은 스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원하는 스타로 만들어내려 한다는 점이다. (중략) 사실관계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중략) 해결은 없다. 해결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그건 팬덤 스스로의 존재증명을 위한 놀이와도 같다.

 

* 권부문과의 인터뷰 2

 작가가 엣지에서 살다가면 그것이 중심이 되는 역사를 믿지요.

(중략)

 하나같이 나이먹으면 똑같은 인간이 되어가죠. 지금 나이 육십대들이 비틀스 노래 부르던 세대예요. 그 인간들 지금 하는 짓 보세요. 옛날에 70 먹은 할배들하고 똑같은 짓 한단 말이야. 정말 무슨 병균에 감염된 것 같잖아요. 이십대에 소비했던 비틀스는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 와서 눈뜨고 못 볼 인간이 돼 있냐. (중략) 최전선에서 최고의 감각으로 앞서나가려 해도 그걸 받아들이는 매순간 접점의 태도가 잘못되어 있으면, 어느날 자기도 소비된 시대의 찌꺼기에 불과한거야.

(중략)

 어느날 세상이 자기를 버린단 말이에요. 외로워지니까 삐쳐가지고 찌질이 열폭하는 거지. 왜 그렇게 사냐고요. 배수친 치고 자기한테 하나도 없는 것처럼 살아봐요. 그러면 자기만의 길이 생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