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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 1931~1935 by 버트런드 러셀

LadyYvonne 2013. 3. 30. 21:58

런던통신 1931-1935 - 6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사회평론

 

- 원제: Mortals and Others

- 부제: 젊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

 

 

버트런드 러셀이 신문 고정적으로 썼던 칼럼을 모은 책...

버트런드 러셀은 '물러설 줄 몰랐던 반전운동가, 자유로운 영혼을 키우고자 했던 교육자, 정의를 요구했던 사회개혁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수학과 논리학의 신기원을 이룬 학자'라고 소개 되어 있다...

1930년대에 쓴 글들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낡은 글 같지 않다... 시대상도 그렇고... 그의 생각도 그렇고...

발전한다는 거... 진화한다는 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암리 인터넷으로 세계가 하나가 되고 내 손안에 모든 걸 할 수 있는 컴퓨터 같은 전화기를 다들 가지고 있으며 우주를 날아다닌다 해도 진짜 알맹이는 과연 발전하고 있는가싶은... 

 

 

 

 

- quote

 

* 이런 쓸데없는 것들이 쌓여 바쁜 하루하루를 채우면서 마치 일이 마무리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완전히 허구다. (중략)

 나는 우리가 매일 30분씩만 말없이 부동자세로 있을 수 있다면 개인적, 국가적, 국제적 차원의 모든 사안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맑은 정신으로 처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시간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시간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며, 두려움은 사람을 타협하게 만든다. 타협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남들 눈에 원숙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면 누군가의 애정이, 차가운 세상의 한기를 몰아내 줄 사람의 온기가 필요해진다.

 

* "어쨌든 인간은 할 말이 없잖아. 면화처럼 유쾌한 물질이 인간이 흘리는 땀이나 흡수하도록 운명지어진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이야. 반면에 면화바구미는 전쟁을 일으켜 싸우지도 않고, 경찰력 따위도 없고, 새끼들에게 구구단을 가르치지도 않아. 그러니 면화바구미가 인간을 대신하게 되면 땅과 물로 이뤄진 지구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총량은 확실하게 늘어날 거야."

 

*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변한 것은 비단 오락 분야만이 아니다. 자신이 전문가가 아닌 모든 형태의 기술, 모든 영역의 지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중략) 현대인은 신문의 도움 없이는 지금 당장 비가 오는지 맑은지조차 말하지 못할 듯싶다. 정치나 세계정세, 혹은 이전 시대의 강건한 미덕으로 복귀할 필요성에 대한 견해들도 신문에서 끌어왔다고 보면 틀림없다. 현대인은 대부분 사안에서 결코 성가시게 자기 의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연구나 경험을 통해 권위를 갖추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편이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중략)

 아동심리학에 취미가 있는 엄마는 보다 직감적인 엄마들은 느끼지도 못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자기만의 교과서와 아이 사이를 계속 오락가락할 것이다.

 

* 어떤 종류의 곤경에 처했든 필요한 것은 쾌활한 감정이 아니라 건설적인 사고다.  

 

* 우리의 사고와 감정 속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개성은 그 핵심이 너무 희미하고 눈에 보이지 않기에 완벽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대부분은 외부 세계에서 자기 내면 존재의 반영물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것을 다양한 수준에서 성취하고 있다. 광고판마다 자기 이름이 홍보되는 사람이라면 최고 수준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축복이 찾아와주지 않는다. 전형적인 주부는 커튼과 양탄자, 식탁과 의자, 만찬용 식기와 커피잔 따위에서 자기표현을 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구를 갖추는 과정을 (중략).

 하지만 그들보다 수줍고 소심한 자아를 가진 이들 - 현대 세계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 도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염원은 남들이 자신을 이웃들과 정확히 똑같게 봐주는 것이다. (중략)

 이런 것이 최고의 야망인 사람들은 존경을 바라는 마음보다 경멸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게 분명하다. 혹시 존경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진정 본질적인 특성이 아니라 성공적인 모방을 통해 존경을 확보하고자 한다. (중략)

 활기넘치는 개성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광경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스스로 박탈한다.

 

* 나는 우리 시대의 염세주의자들에게 신체 활동과 소박하지만 건강에 좋은 식사, 장시간의 수면으로 짜인 엄격한 요법을 처방하면, 그들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온갖 것들을 깨닫고 그것들을 직접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 될거라고 생각한다. 

 

* 우리는 기나긴 자연도태를 거쳐 이성을 획득했지만 그렇게 얻은 이성에 이토록 무심하다.

 

* 내가 생각하는 마음의 도덕은 주로 친절한 감정과 선한 본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설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으며 왕성한 소화력, 건강한 내분비선, 복 받은 환경 등으로부터 생겨난다. (중략) "신선한 채소를 더 많이 먹어라. 그러면 너의 이웃들을 덜 미워하게 될 거다."

 

* 예전 사람들은 먹기 위해 빵을 굽는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굽기 위해 빵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돈을 쓸때도 우리가 구매하는 것을 향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건을 만든 사람들을 살찌우기 위해 써야 한다. 사업 기술은 최고의 미덕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원하지 않는 것을 사도록 하는 데 발휘되는 것이므로, 구매자들을 가장 괴롭힌 사람이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 (중략)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지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돈을 번다. 그 돈을 번 ㅅ람들은 또다른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그것을 지출하고..... 이 연쇄 고리의 맨 끝은 아수라장이다.

 

* 민주주의가 필요한 까닭은 인간 본성에 담긴 충동의 힘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까닭은 평범한 유권자가 무슨 정치적 지혜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의 어떤 집단이든 일단 권력을 독점하면, 나머지 집단은 삶의 좋은 것들을 누리지 않고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을 입증할 목적으로 각종 이론을 창안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낭만적'이니 '현대적 사고방식'이니 '과학적'이니 하는 형용구로 사람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는 가정이기도 하다. 자신은 신비롭고 불가해한 심오함으로 충만하지만 남들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우월성을 믿는다는 얘기의 연장이다.

 

* '섬나라 근성'은 섬사람들의 특징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오히려 그것은 광대한 내륙 국가 주민에게서 너무나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일수록 '섬나라 근성'의 편협한 사람들로 변하기 쉽다. 지금까지 문명의 진보는 항상 해양 민족들에게서 시작됐다.

 

* 세상의 유쾌하지 못한 모든 측면에 겁을 먹고 피하기만 하는 것은 위험한 습관일 뿐 아니라 경박하고 허약하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 부는 사랑의 껍데기뿐만 아니라 종종 사랑의 실체도 살 수 있다. 공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

 

* 자만심도 예의와 눈치가 있어야 통하는 법이다. 남학생들은 자만할 기회가 거의 없다. 사내아이들이란 그런 아이들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예의를 버린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이런 개혁을 시작하는데 앞장서지 않기를 바란다.

 

* 나는 인종 혐오에 담긴 본능적인 요소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낯선 것들에 대한 두려움, 이미 자리 잡은 생활 방식을 위협하는 어떤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이 없다면 인종 혐오는 일어나지 않는다. (중략)

 인종 혐오는 가장 잔인하고 미개한 정서다. 군중 속의 인간들은 이 정서에 물들기 쉽다. 이것을 약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진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수단들 중 가장 강력한 효력을 지닌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경제적 안정일 것이다. (중략) 운이 좀 더 좋았을 뿐인 인종과 계급들이 그들 자신은 잃을게 전혀 없는데도 다른 인종과 계급에게 평등을 허용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종 갈등 문제에서 친절과 관용은 미덕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그 교훈을 깨닫기 전에 먼저 수많은 쓰디쓴 교훈들을 체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는 두렵다.

 

* 너무 지나친 신중함에 반대하는 이유가 두가지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취향과 욕망이 변하게 쉽다는 점이다. (중략)

 목적 대신 수단을 위한 삶이 너무 지나치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즐거움은 죽어버리고, 그럼으로써 미적 감각은 파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