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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 ![]() 김승옥 지음, 구재진 엮음, 이경하 그림/사피엔스21 |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 문학사상 최고의 단편소설이라는 무진기행을 드뎌 제대로 읽어봤다... 왜 그런 인정을 받는지 알만하다...
근데 난 이 책에 들어있는 다른 단편들도 참 좋았다... 특히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런 풍 새로우면서 맘에 든다... 싸하고 쓸쓸하면서도 비꼬는 맛도 좋고~ㅋ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어... 단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이건 청소년을 위한 해설이 밑에 조금씩 나와있어 좀 방해된다;;;
- quote
* 그러자 나는 이 모든 것이 장난처럼 생각되었다. 학교에 다닌다는 것,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 사무소에 출근했다가 퇴근한다는 이 모든 것이 실없는 장난이라는 생각이 든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매달려서 낑낑댄다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 주기로 하자.
* 들을 건너서 해풍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해풍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았다. 짠 냄새 뿐, 말하자면 감각만이 우리에게 자신을 떠맡기고 지나갈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것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우리들은 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것일까. 설화가 없어서 우리는 좀 우둔했고 판단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세상을 느끼고만 싶어 했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종말엔 패배를 느끼고 말들이 우리도 그러했다. 들과 바다 - 아름다운 황혼과 설화가 실려 있지 않은 해풍 속에서 사람들은 영원의 토대를 장만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갔다. 그리고 더러는 뿌리를 가지게 됐고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시들어져 갔다는 소식이었다. 차라리 이 황혼과 해풍을 그리워하며 그러나 이 고장으로 돌아오지는 못하고 차게 빛나는 푸른 색의 아스팔트 위에 그들의 영혼과 육체를 눕혀 버리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한낱 자연의 현상에 불과한 저 황혼과 해풍이 그리하여 내게는 얼마나 깊고 쓰라린 의미를 가졌던가! 숱한 사람들에게 인간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고 동시에 보다 싶은 패배감을 안겨 주고 무심히 지나가 버리는 저것들.
* 인간이란 뭐냐, 인간이란? 저 도시가 침범해 오지 않는 한. 우리는 한 고장을 지키기에 충분한 만족을 가지고 잇는 것이다. 영원의 토대를 만든다는 것, 의지의 신화들을 배운다는 것, 우는 법을 배운다는 것, 침묵을 배운다는 것, 그것만이 인간인 것이냐? 인간의 허영이 아닌가, 라고 나는 누이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파괴와는 어쩔 수 없는 관계인 모양이다. 무엇인가를 발굴해 가는 예지는 신의 나라를 허물어 버리고 있다. 저 하늘에 있던 나라의 모든 건물이 지상에 끌려내려와 세워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의 옥좌마저 지상에 놓일 때 그 의자 위에는 '나'가 앉을까? '남'이 앉을까?
* 경계하면서 사랑하는 체, 시기하며 친한 체, 기뻐하며 슬퍼해 주는 체. 저는 너그럽습니다, 라고 표시하기 위하여 웃으려는 저 입술의 비뚤어져 가는 저 선이여. '모나리자'같은 선생님, 만수무강하십쇼.
* 천 번만 먹을 갈아 보고 싶다. 그러면 내 가슴에도 진실만이 결정되어 남을까? - 한 '카타르시스' 신봉자의 독백.
* 어느 날, 고향의 어머니께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던 편지의 한 구절 - '실은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병자가 되어 버렸어, 라고 힘없이 말하며 병들어 죽어간 친구를 오늘 보고 왔습니다.'
누이에게 쓰고 싶던 편지의 한 구절 - '도시에 가서 침묵을 배워왔던 네가, 도시에서 조리에 맞지 않는 감정의 기교만을 배운 나보다 얼마나 훌륭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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