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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기쁨 1~4권 by 롤랑 마뉘엘

LadyYvonne 2015. 10. 26. 17:47
[세트] 음악의 기쁨 1~4 - 전4권 - 6점
롤랑 마뉘엘 지음, 이세진 옮김/북노마드

 

- 원제 Plaisir de la Musique

 

완전 유익했던 책... 다시금 음악수업을 복습받는 기분... 특히 4권 오페라 편이 난 젤 좋았다... 나머지는 지루한 부분도 꽤 많긴 하다;;;; 그래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하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롤랑 마뉘엘과 피아니스트 나디아 타그린이 3년동안 라디오에서 방송한 대담프로그램을 책으로 옮긴 작품... 1947년에 출간됐다니 정말 고전 중에 고전이겠구나... 그래도 클래식 음악 이야기라 전혀 낡지 않은 이야기다... 그리고 전문 음악가들의 음악가에 대한 진솔한 느낌과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참 좋다... 지금도 이런 솔직하면서 제대로 된 프로그램은 없지 않나 싶다... 다들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얘기라든지 다 아는 얘기 다들 좋다는거 그대로 따라서 좋다하고 그런 식상한 얘기들만 나오지 않느냐 말이다... 동시대의 음악인에 대해서도 좀더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히 말하는 그런장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대담이 있을때는 40년경 50년 경이라 지금의 우리에겐 클래식에 대해 별로 잘 모르더라도 누구나 아는 그런 작품들을 전문음악인이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는 얘기들은 꽤 잼나다...  

 

 

- 3권 quote(2019.3.21)

 

* 한마디로 베버는 낭만파의 소재를 고전파의 엄정성으로 다루었군요

 

* 슈베르트에게는 단명한 사람 특유의 초자연적인 향수랄까, 그런게 있죠. 하지만 기억해두세요. 이 슬픔은 좋은거예요.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혹한데도 씁쓸한 절망은 없죠.

 

* 슈만처럼 접신 비슷한 상태에서 감수성에 휘둘려 곡을 쓰는 사람은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났다스러지는 소품들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직관이 직접적으로 주는 것은 섬광처럼 금세 사라지죠.슈만은 베토벤과 멘델스존은 존경했기 때문에 소나타와 교향곡 같은 거대형식에 집착했습니다. 본능이 지시하는 귀하고 독창적이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요? 이것이 작곡의 문제이자 형식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왜 꼭 자기가 갖지 못한 것만 욕망할까.

슈만은 자신의 부족한 테크닉으로는 지을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에 집착했던 게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천재적 즉흥에서 교과서전인 아카데미즘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슈만의 리트와 피아노 소품집이 후기 교향곡이나 실내악보다 환영받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형식주의는 그에게 잘 맞지 않아요.

(중략)

슈만이 내가 "근대적인 음악의 감성'이라고 일컬을 만한 것을 처음으로 도입한 음악가라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슈만에 의해서 내밀한 서정이 음악으로 들어왔습니다. 또한 슈만에 의해서 음악은 쉬이 변하는 감정의 뉘앙스를 띠게 되었지요.

 

* 구노는 포레와 샤브리에가 걸어갈 길을 닦았습니다. 조르주 비제, 마스네, 나아가 드뷔시가 탐색하게 될 오솔길도 준비했고요.

 

* 하지만 두흐름은 슈만의 후기, 즉 1850년 경이 되어서야 또렷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슈만과 라이프치히악파는 새로운 독일의 경향에 맞서 싸우고 싶어했죠. 그 경향이 바그너와 리스트로 대표되는 바이마르 악파고요. (중략) 서사시적이고 회화적이며 극적인 예술이죠, 음악을 이미지와 관념의 전달매체로 삼는 경향이랄까.

 바꾸어 말하자면, 슈만은 순수음악과 거대 형식의 투사를 자처했군요. (중략)

슈만은 기력이 다했고 후계자를 원했습니다. 그러던차에 브람스를 발견한 겁니다. (중략)

 바그너와 리스트 진영은...

신독일악파, 이 혁명적인 낭만파진영은 베토벤의 후기작들과 베버의 독일 오페라를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슈만과 브람스의 라이프치히악파는...

베토벤까지 포함하는 독일음악 전반의 지도를 따르고자 했지요. (중략)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악파에 속하지만 일종의 지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겁니다. 멘델스존의 우아함과 생동감, 온화한 서정은 바이러스를 약하게 해서 만든 백신 역할을 했지요. 독일 낭만파의 정신 사나운 도취가 체질상 잘 맞지 않는 프랑스 청중도 멘델스존의 백신 덕분에 순수음악의 언어와 형식을 수월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생상스의 예가 그렇죠 (중략)

어떤면에서는 프랑크도 그렇습니다.

 

* 브람스는 힘들이지 않고도 풍부한 감성을 형식의 요구에 맞출 줄 압니다. 형식은 절대적인 것이 되지요. 브람스 음악에서는 형식이 엄격할수록 음악적 발상이 수월하게 흘러나오고 감정이 박력있게 드러납니다.

 

* 베버를 알면 알수록 근대음악의 별의별 호기심과 새로움이 다 그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되네요. 음악에 환상과 이국적 색채를 도입한 사람도 베버잖아요. 오케스트라의 음색을 경지에 올려놓은 대가들 중에서도 베버가 첫 주자 아니었던가요?

 

* 독일의 패권이 한 세기나 지속된 시점에서는 드뷔시가 예리하게 지적했둣이 똑같은 말을 지겹게 반복해서 미안합니다만, 베토벤 '이후의' 음악을 할 것인가, 베토벤을 '따라서' 음악을 할 것인가가 문제였죠. 바그너 '이후의' 음악인가, 바그너를 '따르는' 음악인가. 

 

* 1890년대 전후에 탄생한 프랑스 작품들은 프랑크적이고 바그너적인 환경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군요. (중략)

 당시에 음악깨나 하는 사람들은 바그너주의와 프랑크주의의 법도를 따라야만 했습니다. 생상스는 아마 예외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 드뷔시가 정말 독특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죠. 바그너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에, 처음으로 자기혼자 독창적인 음악을 한 겁니다. 겸허히 노래들을 모아들임으로써 마법을 완전히 풀었죠.

 

* 리트의 본질은 민중적이고 설화적이죠. 자기네들의 오랜 문서 보관소를 뒤져내어 자의식, 말하자면 비판의식을 품게 된 민중의 소산이랄까요. (중략) 푸랑스 가곡들은 민중적 전통이나 족보를 참조해서 만든 노래가 아니죠. 형식이 더 자유롭고 기법은 더 정교한 장르입니다. 

(중략)  '프랑스 리트'는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프랑스의 재주와 맞지가 않아요. (중략) 볼테르의 지적대로 "프랑스 사람은 웅장한 서사시적인 두뇌가 없을" (중략)

 리트는 말과 노래가 동시에 표현되고 그로써 균질한 한덩어리를 이룬 겁니다. 음악과 시가 단단히 결합된 산물이죠.

 

* 프랑크와 그 제자들, 그러니까 당디, 쇼송, 뒤파르크 등은 베토벤적인 전통을 프랑스에 적응시키고자 노력했죠.

 반면에 구노는 포레와 샤브리에에게 길을 보여주고 비제, 들리브, 마스네, 메사제 등이 갈 길을 예비했다.

 

* 포레의 예술은 간결한 세련미와 다소 유약한 우아함을 결합시키고, 자신의 진실을 위압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은근히 침투시키죠. (중략) 프랑스 밖에서 포레가 받는 대접이 프랑스에서 브람스가 받는 대접과 비슷하다는 생각해봤어요? 브람스를 대가로 인정하는 곳에서는 포레를 무시하는 것이 원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걸요.

 

* 드뷔시는 관습과 체계에서 빠져나가 좀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인간적 감성의 비밀을 발견했고요.

 

* 미학적인 면과 기법적인 면, 양쪽 모두에서 차이가 나타나죠. 일단 드뷔시가 서정의 마법사라면 라벨은 감각의 마술사라고 하겠습니다. (중략) 라벨이 좀더 또렷하고 (중략) 좀더 드라이하죠 (중략)

드뷔시의 형식은 덜 직접적으로 파악되죠.

형식이 숨겨진 질서에 내재하기 때문이에요. 반면, 라벨의 작품에서는 구조가 좀더 눈에 잘 들어오죠. 라벨은 고전적인 전통과 좀더 가시적이고 촘촘한 관계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두사람은 기법도 각자의 성격대로 사용하지요. 드뷔시는 푸짐하죠. 라벨은 깨작깨작하고요. (중략)

라벨의 음악에는 몽환적인 매력과 마술사의 능란함이 있어요. 마법인 동시에 고도로 정밀한 기계장치죠.

 

* 드뷔시의 음악은 20세기초에 해방의 신호로 작용했습니다. 그의 사례와 영향력은 유럽음악인들을 독일 음악의 감독 체제에서 해방시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