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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LadyYvonne 2012. 12. 26. 18:09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8점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경덕 옮김/갈라파고스

 

 

 

철학에 관해 잘 모르고 어려워 하지만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 내게 막연한 것에 대해 느끼는 내 갈증을 해소해주지 않을까싶어서랄까... ^^;

특히나 어렵게 느껴지는 건 현대의 철학분야다... 항상 그에 대해 공부해봐야지 하는 맘은 있었지만 무지하게 어렵단 편견과 또 그게 편견이 아닌 사실이란 걸 알기 때문에 미뤄오기만 하다가 이책에 대한 소개를 보고 바로 내가 원하던 그런 입문서란 걸 눈치채고 냉큼 돌입~

역시 소개처럼 어렵지 않고 재밌다... 하지만 역시 생각꺼리를 많이 준다... 그들 구조주의의 4인방이라 불리는 그들에 대해 좀더 알고 쉽단 열망까지... 그리고 그 이후인 포스트구조주의는 어떤 것인지도 궁금~

이 책의 저자 자신의 글빨도 참 좋다~ 이런 책을 쓴단거 말이 쉽지 전문서써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거라 생각... 이분의 책도 더 읽어보고 싶단 생각...

 

아래 quote는 지금까지완 달리 요약과 정리가 필요한 책이라 발췌뿐만아니라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정리를 겸했다... 마구 뒤섞여 있음;;;

 

 

 

 

- quote & 정리

 

0. 들어가는 말

 

*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 한가지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중략)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가?'라는 물음을 정확하게 인지하면 우리가 '거기에서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지성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입니다.

* 포스트구조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구조주의를 상식으로 간주하는 사상사적 관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시대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언젠가 끝이 날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상식이 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편견의 시대를 살고 있다'라는 자각 자체가 구조주의가 안고 있는 중요한 단면입니다.

* 세계에 대한 견해는 시점이 바뀌면 달라집니다.

*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중략)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인 주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 자유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파헤친 것이 구조주의의 성과입니다.

 

 

<구조주의 이전>

 

1. 마르크스

 

* 마르크스는 (중략) 인간의 개별성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가?'가 결정한다고 생각. '누구인가?'는 '존재하는 것'에 무게중심이 있는 반면 '어떤 일을 하는가?'는 '행동하는것'에 무게중심이 있습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도약해서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헤겔의 인간학을 거칠게 표현한 것입니다. (중략)

 '인간은 행동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그 창조물이 그것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생산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을 매개로 인간은 자기의 본질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기본적 인간관입니다. (중략) 인간은 '스스로 창조한 세계 속에서 자기를 직관'합니다. (중략)

 '만들어내는' 활동을 일반적으로 '노동'이라고 합니다. (중략) 헤겔에 따르면 '인간이 인간으로서 객관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노동에 의해. 오직 노동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초월해서 자기를 자기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야심이 동물의 두뇌 속에는 없습니다. (중략) 동물은 자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중략)

 인간은 타자의 시선을 가지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지만 동물은 스스로의 시선을 가지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지만 동물은 스스로의 시선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자기를 대상화해서 직관할 수가 없습니다. (중략)

 헤겔이나 마르크스는 모두 (중략) '생산=노동'에 몸을 던짐으로써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즉 노동하는 사람만이 '나는'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있다는 뜻. (중략)

 관계망 중심에 주관적이고 자기결정적인 주체가 있고 그것이 내가 의사를 결정하는 데 기본이 되어 전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관계의 매듭 안에서 주체가 '누구인가'가 결정된다는 생각을 '탈 중심화' 또는 '비중추화'라고도 합니다. (중략) 중심을 갖지 않은 관계망을 형성하려는 운동이 있고 그 연결의 '얽힘'으로서 주체가 상정된다는 '지동설'적인 인간관으로의 이행. 그것이 20세기사상의 근본적인 추세.

 

2. 프로이트

 

* 본인은 직접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의 판단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 이것이 '무의식'입니다.(중략)

 '자아는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라,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 가운데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드물게 보고받고 있을 뿐' (중략)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급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간파. 프로이트는 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잇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하고 잇는지를 모르는 채로 생각한다는 것을 간파. (중략)

 억압의 매커니즘 (중략)  인간주체가 '자기는 무언가를 의식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화할 수 없다는 견해를 주장.

 

3. 니체

 

* 공리주의자의 도덕관 :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끝없는 전투상태로 안정적으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사회계약을 기초로 해 창설된 국가에 자연권의 일부를 위임하여 사유권을 보장받음.

'사유재산의 보전, 개인의 자기보존, 자기실현'을 목적으로 함. 근대시민사회를 고찰.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서악의 규범. 이기적 동기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민들에 의해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짐.

 

* 니체의 도덕관: 현대대중사회를 고찰. '짐승의 무리'처럼 '타인과 동일하게 행동하는 것' '만인이 평등한 것'을 목적으로 함. 조리있는 추론이 존재하지 않음. 타인과 동일하면 '선', 다르면 '악'이 된다. 이것이 대중이며 '노예적 존재자'

 이 '노예'에서 세상을 구할 영웅은 '외적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인 '귀족' 그것의 극한이 '초인'이란 것.

여기서 모순점은 초인이 있으려면 '영원한 천민' 혐오스러운'짐승의 무리'가 계속 고정되어 잇어야 한다는 것. 하여 이 이론은 반유대주의로 향해버렸다...

 

* 니체의 사상적 업적: 과거 어떤 시대를 '지금'을 기준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위해선 치밀하고 철저한 기초자료와 대담한 상상력, 그리고 편안한 지성이 필요하다는 것.

 이 생각은 훗날 미셸 푸코에 의해 계승된다. '대중 혐오'의 경향도 계승.

 

 

4. 소쉬르

 

* 논란이 있지만 구조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랄수 있음. 언어학.

 개념이 있기 때문에 말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말이 없다는 것은 개념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중략)

 심리적으로 보아 우리의 사상은 낱말을 통한 그 표현을 빼면 형태없고 불분명한 덩어리에 불과. 기호의 도움없이는 두 개념을 분명하고 한결같은 방법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데에 철학자와 언어학자들은 항상 의견을 같이 했다. 사상은 그 자체로 보면 하나의 성운과 같아서 그 속에 필연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일반 언어학 강의 중에서 (중략)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게 된 것.

 

* 외국어를 모국어의 어휘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 관념을 낳은 종족의 사상'을 채용하는 것. (중략)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깊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 '마음속에 있는 어떤 생각'이라는 것은 사실 언어에 의해 '표현'됨과 동시에 생긴 것입니다. (중략) 우리가 '마음'이나 '내면'이나 '의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언어를 운용한 결과, 나중에 얻게 된 언어 기호의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내가 말하고 있을 때 내 속에서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 이 소쉬르의 이론은 프라하학파, 포르말리즘, 미래파, 후설 현상학 등과 이종배합을 하면서 구조주의를 생성시킨다. (중략)

 바로 이 '구조주의의 사총사'라 불리는 문화인류학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정신분석학의 자크 라캉, 기호론의 롤랑 바르트, 사회사의 미셸 푸코 등.

 

 

<구조주의>

 

5. 푸코

 

* '지금, 여기, 나'를 도달점으로 생각한, 역사의 흐름은 단선적인 '진화' 또는'퇴보'란 생각은 환상이다. 9중략)

 '지금, 여기, 나'라는 것은 역사에 무수히 존재하는 분기점이나 어느 방향이 '어쩌다가' 선택되어 출현한 것에 불과.

 (중략)

 예를 들면 (중략) 와트의 증기기관을 운전 수단으로 만들때 많은 기술자들이 먼저 생각한 것은 '말처럼 지면을 차고 전진하는 기계'였습니다. 그때까지의 운송 수단은 모두 '무엇인가가 차를 끄는'구조였기 때문에 인습적 상상력이 '쇠로 만든 말'의 설계로 향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스티븐슨이 '무엇인가가 차를 끄는' 것이 아닌 '차바퀴 자체가 스스로 회전하는' 기관차를 구상했는데 이것은 콜럼버스의 계란이나 다름없는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중략)

 푸코는 그때까지늬 역사가가 결코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에서 출발. 그것은 '이들 사건은 어떻게 말해져왔는가?'가 아니라 '이들 사건은 어떻게 말해지지 않았는가?'

 

* 푸코는 최초의 학술적 주제로 '광기'를 선택 (중략)

 17세기 이전의 광인은 지역사회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고유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 (중략) 악마라는 ㅗㅊ자연적인 힘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간주.(중략)

 근대와 더불어 천사와 악마와 인간이 세계를 나우어 갖기 위한 장치였던 광인은 볕이 드는 장소에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중략) 세계는 표준적인 인간만이 사는 장소가 되었고 거기에서 벗어난 사람은 조직적으로 배제. (중략)

 근대사회는 '인간' 표준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정신병자, 기형인, 부랑자, 실업자, 거지, 빈민 등 다양한 '비표준적인 개체'-을 강제적으로 배제하고 격리했기 때문. (중략)

  (중략) 광인은 '다른 세계'에서 온 '손님'일 때에는 공동체로부터 환대를 받았고 '이 세계의 시민'에 편입될 때에는 공동체로부터 배제. (중략) 광인은 이해되고 명명되고 분류되었으며 배제되었습니다. 광기를 배제한 것은 '이성'입니다. (중략)

 광인은 사법관에 의한 수감의 대상이 아니라 의사에 의한 치료의 대상이 됩니다. 얼핏 광인의 처우 방법이 보다 합리적이고 인도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단단한 격리'로부터 '부드러운 격리'로의 이행과정에서 어떤 공범관계 (중략) 바로 의료와 정치의 결탁, 즉 '지와 권력'의 결탁입니다.

 

 

* 신체도 하나의 사회제도 (중략)

 미국개척기에는 신체는 클수록 좋다는 인정. (중략) 그러나 현대의 미국에서는 다이어트에 몰두하고 눈에 띄지않으며 공간을 차지않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략)

 역사적 상황이 바뀌면 신체의 모습도 바뀝니다. (중략)

 

 잔인한 전근대의 신체형벌은 '시해자의 정치적 신체' 즉 '의미에 의해 엮인 신체'를 파괴하는 것을 목적. (중략)

 신체적 고통과 같은 물리적, 생리적 경험조차 역사적인 또는 문화적인 조건에 의해 전혀 달라집니다. (중략)

 

* 국가는 신체를 조작한다

 근대국가는 예외없이 국민의 신체를 통제하고 표준화하며 조작 가능한 '관리하기 쉬운 형태'로 두는 것, 즉 '순종적인 신체;를 조형하는 것을 정치적 과제 가운데 최우선으로.

 

* 성의 역사

 푸코가 지적한 것은 모든 지의 영위가 그것이 세계의 성립이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축적'하려고 하는 욕망에 의해 구동되는 한 반드시 '권력'적으로 기능한다는 점. (중략)

 결국 푸코 자신의 저작 또한 마찬가지라는 역설.  (중략) 제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의 '의심'까지도, '제도적인 지'로 의심받는 그 제도에 속한다는 불쾌함.

 

6. 바르트

 

* 바르트의 작업은 '기호학'

 징후(인위적인게 아닌 자연적인 관계로 묶인 것), 상징(어떤 표시가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 현실적인 연상으로 결합)

 기호라는 것은 어느 사회집단이 인위적으로 약속한 '표시와 의미의 결합'. 기호는 '표시'와 '의미'가 '하나'가 되어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생깁니다. 또한 '표시'와 '의미' 사이에는 어떠한 자연적, 내재적 관계도 없습니다.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의 기능적 관계뿐. (중략)

 우리의 사고나 경험의 양식은 우리가 쓰는 언어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사고나 경험의 양식도 변하게 됩니다. (중략)

랑그(모국어... '어느 시대의 글을 쓰는 사람 전원에 의해 공유되는 규칙과 습관의 집합체' 즉 외부로부터의 규제에 따라 사용), 스틸(언어감각... 사람마다 고유의 언어적인 감수성 또는 선호도, 즉 내부에서의 규제)

에크리튀르(바르트가 발견한 제3의 규제... 집단적으로 선택되고 실천되는 선호, 어법,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적 입장에 따라 선택하는 어떤 집단 고유의 언어, 교사의 어법이라든가 깡패의 어법 등, 즉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지만 남성중심의 어법 등을 얘기함.)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이처럼 '얽힌' 구조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비평의 기본원리로 제시한 것이 바르트가 텍스트 이론가로서 남긴 가장 큰 업적입니다. 

 

* 저자의 죽음, 독자의 탄생...  카피라이트의 무의미

 

* 순수한 에크리튀르 - 말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개입이 전혀 없는 순백의 어법

 하지만 불가능한 꿈... 이를테면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뉴스도 얼마든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음.

 카뮈의 '이방인'. 일본의 하이쿠 시

 

7. 레비스트로스

 

* 문화인류학자. 프랑스 사상계에 군림해온 실존주의에 실질적 사망선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하이데거, 야스퍼스, 키르케고르 등의 실존철학에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이론을 접합한 것. 실존이란 자기존립의 근거가 되는 발판을 '자기의 내부'가 아니라 '자기의 외부'에 두는 것. '실존은본질에 선행한다.' 즉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내리는가에 따라 그 인간이 본질적으로 '누구인가'가 결정된다는 뜻.

 '참여하는 주체'는 주어진 상황에 (중략) 주관적인 판단을 토대로 자기가 내린 판단의 책임을 받아들이며, 자기의 본질을 구축해가는 것. 그 결단에 대한 평가는 차후에 '역사'가 내린다. 역사의 흐름과 규칙을 안다면 올바른 결단을 내릴 수 있을거다.

 사르트르는 역사적 상황의 변동을 확인하지 않고 자기변혁의 노력을 게을리한 카뮈에게 사상가로서의 사망선고를 내렸다.

 주체는 주어진 상황의 결단을 통해 자기형성을 한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늘 '정치적으로 옳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정치적 올바름'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역사인식을 전제해야 한다는 단계에서 구조주의는 실존주의와 결별.

   

* 추상적인 언어의 사용은 그것이 지적 능력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민족사회 속의 특정집단이 지니고 있는 관심의 차이에서 온다. - 야생의 사고 중에서

(중략) '문명인'과 '미개인'은 그 관심을 갖는 방법이 다를 뿐, '문명인'처럼 세계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미개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중략)

 우리는 모두 자기가 보고 있는 세계만이 '객관적으로 리얼한 세계'이며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세계는 '주관적으로 왜곡된 세계'라고 생각하며 타인을 깔봅니다. (중략)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이런 점에서 사르트르의 '역사' 개념에 이의를 제기.

 '역사를 갖지 않으' (중략) 신석기 시대와 거의 흡사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부족이 (중략)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구 있을까요? 레비스트로스는 '문명인'의 그런 오만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중략)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가 "'나는 생각한다'의 죄수"가 되었다고 (중략)

 사르트르가 '역사'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역사적으로 옳은 결단을 내리는 인간'과 '역사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중략) 야만인이 그들의 독자적인 잣대로 '자기들'과 '주변사람들'을 구별하는것과 동일한 행위입니다.

 

* 레비스트로스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윤리적인 자세 - 서구적 지성의 '우쭐거림'에 대한 엄격한 자제

 

* 음운론phonology(음소론) -  언어 소리의 차별화가 지닌 메커니즘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학문.

 언어의 소리가 지닌 물리학적, 생리학적인 성질 가운데 어떤 특징이 의미가 있고 어떤 특징이 무시되는지는 각각의 언어집단 내에서 이루어진 '약속'을 바탕으로 합니다. (중략) 세계의 모든 언어 소리는 12비트로 표현할 수 있다. (중략) 마찬가지로 친족의 기본구조는 2비트로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이 사회구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가 인간을 만드는 것.

 친족구조 - 근친상간의 금지, 증여와 변화

 인간이 타자와 공생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집단에 적용되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사회는 동일한 상태로 계속 있을 수 없다.'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타자에세 주어야 한다'는 두가지 규칙.

 

8. 라캉

 

* 정신분석의 치료 수단은 '언어'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정신분석 치료는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환자의 심적 과정을 의식화시킴으로써 병의 징후를 소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의식화'라는 것은 요컨대 '언어화'이기 때문에 분석치료는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진정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은 (중략) 늘 '생각해내면서 형성되는 과거' 입니다.

 정신분석치료는 다른 것으로 드러내는, 번역하는, 이전하는, 대체하는 것.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옮기는 것.'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님. '증상'을 없애는 것.병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

 '자아' = '나 = '주체' 일수가 없다.

 

* 타자와 언어를 공유하며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것. 그것이 인간이 지닌 인간성의 본질적 조건. 정신질환의 치료는 인간의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를 껴안고 있는 사람들을 커뮤니케이션의 회로 속으로 다시 맞아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  '부조리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승인해라'

 '도깨비'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분절은 '내'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끝나 있고 '나' 는 어떤 이유에서, 어떤 기준으로 분절이 이루어졌는지 소급해서 알 수가 없다'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무능을 보여주는 '기호'입니다.

 '나는 무능력하다'라는 사실을 맛보게 될때 반사적으로 그 사태의 원인이 '나의 외부에 있으며, 나보다 강력한 것이 나의 온전한 자기인식이나 자기실현을 방해하고 있다'는 이야기 형태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지니는 것, 다른 말로 하면 '무서운 것'에 굴복하는 능력을 몸에 지니는 것이 오이디푸스라는 과정의 교육적 효과입니다.

 '나'의 자기실현과 자기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의 '원인'으로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간섭에 의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설명되었다는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심리구조를 주입하는 것을 우리 세계에서는 '성숙'이라고 부릅니다.

 

* '정상적인 어른' 또는 '인간'이란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나의 토대를 얻게 되는 "거울단계"와 자기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아버지'에 의한 위협적 개입의 결과로 '설명'하는 "오이디푸스 단계"로 자기기만을 제대로 완수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치료는 대개 오이디푸스 단계의 통과에 실패한 피분석자를 대상으로 하게 된다. 그 작업은 분석가를 '아버지'로 상정,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그 '아버지'와 공유하고 승인받는 형태로 진행. (중략)

 그것은 이해나 내용에 상관없이 '언어 자체'가 중요하다. 언어의 답례를 하는 증여와 답례의 왕복운동.

 정신분석의 목적은 증상의 '참된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것. 그것은 커뮤니케이션 부조에 빠져 있는 피분석자를 다시 커뮤니케이션의 회로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

 

9. 나오는 말

 

* 요컨대 레비스트로스는 '우리 모두 사이좋게 살아요'라고 한것, 바르트는 '언어 사용이 사람을 결정한다' 라고 한것, 라캉은 '어른이 되어라' 라고 한 것이며, 푸코는 '나는 바보가 싫다'라고 했음을 알게 된것이지요.

 

10. 옮긴이의 말

 

* 개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개체 간의 관계를 우선 연구하는 바로 그것이 구조주의 방법인 것.